##_revenue_list_upper_##
728x90

 

 

 

처음부터 이곳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겨울이 되면 더 무거워지는 배낭의 무게를 감안해서 많이 힘들지 않고 적당히 운동이 되는 곳으로 가려했었다.

 

먼저 레이더에 감지된 곳은 각흘산. 

원적산과 같은 이유로 능선에 나무가 잘려 나가 황량하고 거친 느낌의 산.

 

 백패킹 갈 곳을 리스트에 올려놓고 한 곳 한 곳 직접 찾아가 보는 걸 난 좋아한다. 모니터로 후기만 봐오던 곳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단순한 행위 이건만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오늘도 위시 리스트 중 한 곳을 찾아간다는 사실에 룰루랄라 신나 하면서 차를 몰고 포천에서 철원 쪽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들머리에 도착하자마자 처참하게 무너졌다. 

 

들머리는 굳게 닫혀 있었다. 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돼지열병이 대한민국에서 종식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포천과 철원 경계지역에 위치한 외진 이곳은 돼지열병을 차단하기 위해 여전히 멧돼지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과감하게 포기를 하고 대안으로 선택한 곳이 근처에 위치한 명성산. 

산정호수를 품고 있고, 가을이면 산 능선을 뒤덮는 억새로 유명한 곳이며, 궁예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산이라는 것 빼곤 명성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급하게 지도를 검색해 찾아간 들머리, 산안고개에서 바라본 명성산의 첫인상이다. 육산이 아닌 바위산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지만, 들머리 여기저기 보이는 군부대 훈련 진지에 더 눈이 쏠렸는지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계곡을 따라 나있는 등로에도 바위와 돌 투성이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돌부리와 바위를 밟고 지나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평탄하지 않은 바닥과 불규칙한 보폭에 시간은 지체되고 다리는 점점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지만 산정산에서의 혹한을 대비하기 위해 챙긴 짐으로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오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각흘산을 들렀다 오느라 출발이 늦은 데다 산행 속도를 더디게 하는 무수한 돌부리들 때문에 삼분의 일도 가지 않았는데 벌써 해가 지려고 한다. 서산으로 떨어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늘도 초행길에 야등이구나'라는 생각에 불안한 한 숨을 내뱉는다. 

 

 

 

 

 

 

 

 

 

 

 

 

 

명성산의 팻말은 친절하지 않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어두워져 좁아진 시야와 고도가 높아질수록 급하지는 경사. 그리고 여전히 괴롭히는 돌과 바위들 때문에 산행속도는 느려질 만큼 느려진다. 속도가 느린 만큼 덜 힘들어야 하는데 숨이 차오르는 건 여전하고, 머릿속 계산으론 벌써 정상에 도착해야 하는데 줄곳 보이는 봉우리는 여전히 머리 위로 우뚝 솟아 있어 미칠 지경이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 하늘까지 연결되어 있을 것 같던 오르막길은 어느덧 끝이 나고, 덜 수고스러운 능선길을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산 위에서의 저녁 식사는 언제나 꿀맛이지만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 탓인지 평소보다 빨리 끝나고, 침낭 안에 지친 몸을 뉘이자마자 눈은 저절로 감기었다. 

 

 

 


 

 

 

인기척은커녕 새소리, 야생 동물의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새벽에 잠을 깼다. 

"샥  -   샥"

텐트 위로 무언가 내려앉으며 나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 

눈이 내려앉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집중해서 다시 들어봐도 눈이 내려앉는 소리가 분명했다. 주변이 워낙 조용해서 그 작은 소리가 텐트 안에선 제법 크게 들려왔다.

'눈이 많이 내리면 내일 귀갓길이 힘들 텐데 어쩌나'라는 생각을 하고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말자 텐트 지퍼를 살짝 열고 밖을 내다봤다. 눈은 없었다. 

또렷이 기억이 나는 걸로 봐선 분명 꿈을 꾼 건 아니었다. 텐트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서자 새벽에 들려왔던 소리의 정체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상고대. 산 꼭대기에 머물던 수증기가 새벽 찬 기운에 얼어붙으면서 박지 주변 나무들을 모두 흰 옷으로 갈아입혔다. 동계 백패킹을 하면서 상고대 내려앉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또 다른 장관이 반대편으로 펼쳐진다. 산골짜기에 피어오르는 운무 사이로 일출이 시작되었다.

 

건너편 왼쪽 상단에 봉긋 솟은 산이 각흘산이다. 이번에 오르진 못했지만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산상 아침은 영하의 날씨지만 지난 번 능경봉 백패킹 때에 비하면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

덕분에 의자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는 잠깐의 여유도 누릴 수 있었다.

 

 

 

 

 

 

 

 


 

 

 

다시 배낭을 메고 내려가는 길에도 온통 상고대 세상이다.

 

 

 

 

 

 

 

 

 

 

 

 

 

 

 

 

 

 

 

 

 

 

 

 

 

 

 

 

 

 

 

어제 저녁 예상보다 늦어져 그냥 지나쳤던 정상을 들렀다 본격적으로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어제 고개를 들 때마다 보이며 수 차례 절망에 빠뜨렸던 삼각봉이 하산할 때는 금세 나의 시선에서 사라져 버렸다.

 

 

 

 

 

 

 
 
 
728x90
728x90

 

 

 

동계 백패킹!

백패킹을 시작한 지 제법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단어.

돈이 없어 장비를 미리 장만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선뜻 실행에 옮기기엔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져서가 아닐까.

 

머릿속에서 그 단어를 끄집어내어 몸소 체험을 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복잡할 것이 없다.

경험해 보지 못해서 생기는 이런저런 상상과 추측으로 복잡하던 머릿속이 한결 명료해졌다.

 

이왕 체험을 하는 바엔 제대로 해 보자는 생각에 강원도로 향했다.

사시사철 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오는 곳.

겨울이 되면 우리나라 최설 지역 중 하나인 곳.

대관령이 이번 산행의 목적지다.

 

 

 

 

 

 

 

 

 

 

 

완만한 대관령 고원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대관령 휴게소 풍력발전기는 힘차게 돌아간다.

풍력발전기를 등지고 길지 않은 우리의 산행은 시작된다.

 

 

 

 

 

 

 

 

 

 

 

 

 

겨울 산의 모습은 단조롭고 황량하기만 하다.

쌓인 눈에 낙엽도 보이지 않는 겨울나무는 죽은 듯 더 메마르고 앙상해 보인다.

키 작은 조릿대 잎만이 이 산속에 흔치 않은 초록빛 존재감을 보인다.

 

동지를 갓 지난 산속 늦은 오후에 인기척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하얀 눈 위 발자국.

 

 

 

 

 

 

 

 

완만하게 시작하던 등로는 점점 경사가 급해지고,

추운 산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챙긴 장비로 가득 찬 배낭 무게에 걸음을 멈추고 쉬어가는 일이 잦아진다.

쉬기 적당한 포인트에 먼저 다녀간 누군가가 눈 위에 새겨 놓은 "능경봉"

새하얀 화선지에 붓으로 써 놓은 듯 멋지다.

우리가 목적지에 제대로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표시이기도 해서 더 맘에 든다.

 

 

 

 

 

 

 

 

아무래도 정상에 도착하기 전 어두워질 듯하다.

다행히 하얀 눈 위 발자국은 여전히 또렷한 편이다.

헤드랜턴을 꺼내지 않고 쉬다 가다를 반복하며 올라가니 동쪽으로 강릉 시내가 눈에 들어오고

잠시 후 헬기장을 지나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위와 오리에게는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한겨울에 우모로 된 옷과 침낭이 없다면 백패킹은 쉽게 도전하기 어려울 듯싶다.

우모복과 다운부티로 무장하고 텐트 안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제법 견딜만하다.

 

 

 

 

 

 

 

 

능경봉의 조망은 뛰어나진 않지만 괜찮은 편이다.

평창 쪽 전망은 나무에 가려 볼 수가 없지만, 반대편 나뭇가지 너머로 강릉 야경이 눈요기가 되어 준다.

야경과 별 사진을 찍으러 텐트 밖으로 나왔다 몇 장 찍지 못하고 텐트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손가락, 발가락이 얼어붙을 것 같이 추워서 밖에서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우모복을 그대로 입고 침낭 안에 들어가 번데기처럼 누웠다.

핫팩을 두 개를 터뜨렸는데도 침낭 안은 따스한 기운이 별로 없다.

언제쯤 따뜻해지려나 생각하다 잠이 들었나 보다. 살짝 더운 느낌이 있어 잠에서 깼다.

밤새도록 텐트를 때리는 바람 소리가 제법 시끄러웠지만, 1300g 구스 침낭 덕분에 얼어 죽지 않고 잘 잤다.

 

 

일출을 구경하러 온 또 다른 백패커 발자국 소리에 잠에서 깼다.

침낭 안은 천국, 밖은 그냥 지옥같이 춥다.

침낭 안에서 천년만년 있고 싶을 정도로 나가기 싫었지만

일출 구경을 하고 하산을 할 생각에 번데기 모드를 해제하고 텐트 밖을 나왔다.

 

 

 

 

 

 

 

강릉 시내는 아직 잠들어 있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해가 떠오려나 보다.

매서운 추위에도 일출은 늘 그렇듯이 순수하고 장엄하다.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태양같이 희망찬 기운이 불끈 솟아오르는 기분이다.

 

 

 

 

 

 

 

 

 

 

 

 

 

 

 

 

 

 

 

 

 

 

 

 

 

 

 

 

 

 

 

 

 

 

 

 

해가 어느 정도 떠오르자 깜깜하기만 했던 능경봉 정상도 제 모습을 되찾았다.

밤새 춥긴 추웠나 보다.

서리가 내려앉은 텐트도 바짝 움츠린 듯 긴장감이 서려있고,

텐트 안에 있던 물병의 물은 꽝꽝 얼어붙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해발 750 미터에 위치한 대관령면이 오늘 아침 영하 10.6도란다.

이 곳 능경봉이 1,120 미터 정도이니 영하 13도까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하룻밤을 잘 버텼다.

앞으로 동계 백패킹을 자신감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P. S.]

 

최근에 구매한 저렴이 수동 렌즈를 들고 이번 산행을 나섰는데 잘못된 판단인 듯하다.

초첨을 일일이 맞춰야 하는 수동 렌즈의 특성상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고, 추운 겨울에는 동상 걸리기 딱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먼지가 사진에 잡혔다. 미러리스의 특성상 센서에 먼지가 잘 들어간다.

청소를 자주 하고 수시로 점검하는 수밖에.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