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돌아가는 주중 회사생활.
하품이 나오고 눈이 감겨 오지만 커피로 그 피곤함을 누르고 업무에서 오는 긴장감 속에 하루를 보내고 나면 퇴근 시간부터 그동안 숨어있던 피곤이 내 몸속에 확 퍼지면서 녹초가 되곤 한다.
그 피로를 풀기 위해 주말에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푹 쉬어보기도 하지만, 몸은 좀 편해졌는지 모르겠지만 가슴 한 구석엔 답답하고 허전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더라.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득히 먼 옛날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유전자는 이런 삶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빠르게 움직이는 일상.
어디선가 쏟아져 나온 차들로 도로가 막혀 언제 뚫릴지 모른 채 차는 스멀스멀 기어가고,
지하철에서는 한꺼번에 몰린 사람들 틈 속에 겨우 두 발 세울 자리를 만들어 한 숨 돌리나 했더니 갑작스러운 지하철 흔들림에 어쩔 줄 모르고,
나무 숲보다 아파트 숲, 빌딩 숲을 더 자주 볼 수밖에 없는 일상에 내 몸속 유전자는 불만이 상당할 듯하다.
쳇바퀴 속으로 들어가 빨리 돌리고 돌리고, 잠시 주말에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급히 돌려야 하는 피곤하고 매력 없는 생활. 그런 생활을 벗어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무언가는 낚싯대가 될 수도 있겠고, 골프채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큰 배낭을 우선 사들였다.
대형 백팩을 구매하고 집에서 받아본 그 날이 잊히지 않는다.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지던지. 과연 내가 이걸 메고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이 지나고 이제 그 큰 배낭이 내 등에 밀착되어 내 몸의 일부인 양 친숙함이 느껴진다.
그 친숙한 배낭을 메고 2019년 첫 백패킹을 나선다.
올해 첫 출정이지만 금요일 야등으로도 만족한다.
짐을 챙기고 배낭에 그 짐을 차곡차곡 눌러 채우는 일은 절대로 수고스럽지 않다.
이 배낭을 짊어지고 떠날 생각에 어릴 적 소풍 전 날처럼 설렌다.
하지만 이런 설레는 기분은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처참히 무너진다.
오르막길을 한 발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후회의 물결이 한없이 밀려온다. 집에서는 만만했던 배낭의 무게가 천근만근으로 느껴지고, 이것 저것 바리바리 챙겨 온 내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 없다.
주변 400 ~ 500 미터 급 산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야밤에 개고생을 하면서 '여기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라는 4차원적 생각이 들 때면 이 정도 높이면 목적지가 그리 멀지 않더라.
1000 미터 급 산이었더라면 그런 4차원적 생각을 수없이 하면서 잘하지도 못하는 욕을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개고생을 하고 박지에 도착하면 내 기분은 다시 반전한다.
때마침 동그라미 가득 채워 휘영청 밝은 달.
높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낮은 땅 사람들이 만든 불빛.
별 것 아니지만 유난히 예뻐 보이는 텐풍.






아직은 쌀쌀한 산속 밤기운에 아늑함과 훈훈함으로 가득 찬 쉘터 안에서 급할 것도 없고 눈치 볼 것 없이 먹는 음식 맛은 기가 막힌다. 누군가 내 혀에 마법을 부렸는지 이곳에선 인스턴트 음식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늦은 밤, 배부르게 야식을 먹고 오래간만에 남자들끼리 수다를 떨다 보니 산속 시계는 무척이나 빠르게 돌아간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별다른 불만이 없다.
산 위에서 맞이하는 아침에도 무언가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뜨는 해이건만 이곳에선 유난히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새벽 산 속 고요한 어둠 속에서 한 덩이 빛을 내뿜으며 올라오는 장엄한 광경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이 마을 곳곳에 비치기 시작하면 주변 풍경도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운무가 낀다면 더 환상적이겠지만, 옅은 안개 사이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 하다.








산속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 일상생활과는 다른 신선하고 특별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느낌이 참 좋다.
그 기운을 듬뿍 받고 내려가는 길에는 여기저기 진달래 무리가 분홍 빛 치장을 하고 우리의 하산을 배웅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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